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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다가감이다

작성일 :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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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의 단절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어

한국의 애니메이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악령을 퇴치하는 K팝 여성 아이돌이라는 콘셉트, 한복과 퇴마,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적 요소가 팝 문화와 절묘하게 융합되며 세계적인 문화적 파장을 일으켰다. 해외 팬들은 “전통과 현대가 환상적으로 섞였다”고 말하고,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동양적 스토리텔링”이라며 극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컨텐츠를 보며 한국 교회는 어떤 질문을 받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해보자.

“왜 이런 스토리는 교회에서 나오지 못하는가?”

교회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고유한 세계관이 있다. 창조와 타락, 구속과 회복의 서사.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 공동체의 사랑이라는 드라마.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깊고, 감동적이며, 궁극적인 진리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교회 내에서만 머물러 있고, 세상 속으로 제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케데헌’은 그 스토리의 본질이 강해서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공감받았다. 노래와 춤, 색채와 상징, 스토리와 감정이 하나로 엮이며,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었다. 무속적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기 문화 안의 정체성과 언어로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반면, 교회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언어 안에 갇혀 있다.

“십자가를 믿어야 합니다”, “회개하십시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이 옳지만, 세상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말은 공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지만, 정작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공감 없이 권면하고, 설명 없이 진리를 주장하며, 고통의 언어에 응답하지 않은 채 영적 전쟁만을 외쳤다.

물론 교회는 세상의 문화에 무분별하게 휩쓸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문화와의 단절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세속화’를 경계하며, 복음의 ‘소통화’를 놓쳐버렸다. 교회는 문화적 언어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세상과 연결되는 정서적 통로를 닫아버렸다.

이제 교회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십자가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음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품은 이야기를 이 시대의 언어로 풀어낼 수는 없는가?

한국 교회는 독특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뜨거운 찬양, 통성 기도, 공동체 중심의 신앙, 한(恨)의 정서를 품은 회개의 기도.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안의 감동’으로만 소비해 왔다. 세상을 향해 번역하려 하지 않았고,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이 문화적 유산을 ‘신앙의 예술’로 확장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검증된 컨텐츠를 바탕으로, 드라마, 음악, 영상,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단순히 젊은 감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깊이를 품은 ‘우리만의 언어’를 찾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경건과 진리, 동시에 상처받은 시대의 감정을 품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말만 많은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고,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예술적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

‘케데헌’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야기의 본질만큼이나, 전달 방식도 중요하다”고.

교회는 여전히 세상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말할지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세상 속의 ‘은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진리의 부족이 아니라, 소통의 부재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진리의 권위를 포기하지 않되, 그것을 사랑과 공감의 언어로 옮겨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는 고립된 언어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복음은 늘 시대의 언어를 입고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교회가 이 흐름에 눈을 뜬다면, 복음은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릴 것이다. 회개와 믿음, 순종과 헌신이 다시 시대의 언어로 말해질 수 있다면, 사람들은 교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이제는 말씀이 감정이 되고, 이야기로 되고, 이미지가 되어 세상과 마주쳐야 한다.

‘케데헌’은 결코 복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그 컨텐츠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이 복음을 타협하는 길이 아니라, 복음을 더 넓게 전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시대의 언어로 진리를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교회가 회복해야 할 사명이다.


  • 김 병 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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