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미주교계뉴스] AI는 인간을 닮아가는데, 인간은 누구를 닮아가는가
페이지 정보
본문
초지능 시대, 교회는 AI기술의 발전과 활용도에 앞서 “AI를 인간에게 정렬하기 전에 인간은 무엇에 정렬돼 있는가”를 질문해야 결국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간'임을 확인하는 과정

인공지능을 만드는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개발하는 기술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최근 AI 기업 앤트로픽을 떠난 연구원이 자기개선형 초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AI 안전 문제가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교회가 이 논쟁을 바라보며 “AI가 인간을 멸망시킬 것인가”만 묻는다면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다. AI가 인간을 닮아가고 있는 지금, 인간은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가. 중요한 질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지능에서 오지 않는다
AI는 빠르게 인간의 능력을 모방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며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의학과 과학 연구에도 참여한다. 앞으로 AI가 새로운 AI 개발을 돕고 스스로 성능 향상을 가속하는 단계에 이를 가능성까지 논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 AI가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빠르게 판단한다면 인간의 가치는 줄어드는 것일까. 성경의 대답은 다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세기 1장 27절·개역한글)
기독교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지능이나 생산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노인, 장애인과 천재의 인간적 가치가 능력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계산능력과 지식을 갖게 된다고 해서 인간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AI 시대에 위험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효율성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많은 지식이 더 큰 지혜를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은 지식과 지혜도 구별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장 10절·개역한글) AI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가능한지를 아는 것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인류에게 더 강력한 AI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앞서 왜 그것을 만들려고 하는지 물어야 하는 이유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인가. 다른 기업보다 먼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인가. 국가 간 기술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삶을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인가. 기술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다.
바벨탑은 기술을 정죄하지 않았다
AI 시대에 바벨탑 이야기가 다시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창세기 11장 4절·개역한글)
바벨탑의 문제는 인간에게 건축기술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이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욕망과 결합했다는 데 있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은 질병을 진단하고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고 언어의 장벽을 낮출 수 있다. 교육과 연구의 기회를 넓히고 반복적인 노동을 줄이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가 AI에 던져야 할 질문은 “이 기술은 선한가 악한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이 힘을 사용하는가. 그 질문이 중요하다.
AI를 정렬하기 전에 인간은 무엇에 정렬돼 있는가
AI 안전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정렬(alignment)’이다. 강력한 AI가 인간이 의도한 목표와 가치에 맞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문제다. 그런데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AI를 인간에게 정렬하기 전에 인간은 무엇에 정렬돼 있는가.
인간의 욕망이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인간에게 완벽하게 정렬된 AI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탐욕을 가진 사람에게 강력한 AI가 주어진다면 탐욕은 더 효율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정부가 이를 악용하면 감시와 통제 능력은 커질 수 있다. 거짓을 퍼뜨리는 사람이 AI를 사용하면 허위정보를 훨씬 빠르고 정교하게 생산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위험은 기계가 인간처럼 욕망하기 시작하는 데만 있지 않다. 인간의 욕망이 기계를 통해 이전에 갖지 못했던 능력을 얻는 것 역시 위험하다.
사용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르다
이 문제는 교회 안으로도 이미 들어왔다. AI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조사하고 자료를 분류하며 번역을 비교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교회 행정과 영상 제작, 홍보와 교육자료 준비에도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사용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맡길 것인가이다.
AI에게 자료를 정리하게 하는 것과 설교자의 묵상을 대신하게 하는 것은 같지 않다. 문장을 다듬는 것과 목회적 판단을 맡기는 것도 다르다. 신앙 상담을 보조하는 것과 한 사람의 영적 아픔을 기계의 판단에 맡기는 것도 구별해야 한다.
AI를 사용하는 것과 AI에 의존하는 것은 다르다.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교회는 오히려 무엇을 기계에 맡겨서는 안 되는지 더 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
초지능 시대에 교회가 지켜야 할 것
AI를 곧바로 성경의 종말 예언과 연결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AI를 특정한 종말의 도구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상징을 오늘의 특정 기술과 직접 연결하려면 충분한 성경적 근거가 필요하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자극적으로 예측하는 것보다 지금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인간보다 뛰어난 계산능력을 가진 기계가 등장하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효율성과 생산성이 사람의 가치보다 앞설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기술이 할 수 있는 것과 인간이 해도 되는 것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세울 것인가.
AI는 앞으로 인간을 더욱 정교하게 닮아갈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계보다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가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AI 시대에 교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다. AI가 얼마나 인간을 닮을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과연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가.
- 다음글브라이언 박 목사 ‘Revival in America’… 10월 미 동·서부 순회집회 26.09.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