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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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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하나님은 이루시고 우리는 ★꿈꾸며 기도하고 크리스천헤럴드2025.06.14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선교강국이 되었고 여러나라에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헌신하고 계습니다. 선교용어 중에 하나인 창의적 접근지역(Creative Access Nations)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입국이 불가능하거나 대민접촉과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파해서도 안되고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개인활동과 언론이 제한되고 신변의 안전이 요구되기 때문에 다른 경로로 우회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과 계획이 필요한 곳을 말합니다.   그런 나라들 중에 한 곳에서 제가 존경하는 K 목사님 내외분께서 일생을 헌신하셨습니다. 월남하여 결혼 후 도미하여 목사로 부름받아 오랜시간 충성하던 담임목회를 조기은퇴하고, 60세에 선교에 뛰어들어 무려 20년을 한결같이 달려오셨습니다. 그 시간을 회고하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보물들을 책으로 엮어 한국어와 영문판으로 출간하셨습니다. 제목이 ‘하나님은 이루시고 우리는 꿈꾸며 기도하고’(His Story, Our Dreams and Prayers. 국민북스)’입니다. 80세를 기념하여 팔순잔치와 더불어 기념으로 발간하신 책인데, 책을 읽으며 그 내용과 제 마음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해외사역을 시작하려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할 때와 감추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 부분이 창의적 접근지역에서는 가장 긴장되는 부분입니다. 모든 사역은 대인관계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외부사정을 모르는 그들은 캐묻고 대답을 하는 정말 난처한 만남과 사귐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저의 관심분야이기도 했습니다.그 어려운 부분을 목사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사역을 위해 00에 들어가면 다음 세 가지 사항을 늘 기억하고 지키기를 기도하며 힘썼다. 첫째, 나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쓰시는 하나님의 교회의 목사이다. 둘째, 00 선교회는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아니고 순수한 선교단체이다 셋째, 나는 미국 여권을 가지고 00에 들어온 미국시민이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면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의 종류가 결정된다. 그 사역을 진행하는 방법도 이미 결정되어 있다. (중략). 어차피  진행되는 사역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이니 우리가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선하신 손길로 처리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현장에 가보는 것보다 더 선하고 풍성한 열매를 허락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확실하게 제 마음에 와닿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종종 되물어 봐야 합니다. 특히 나의 주인이 누구신지, 내가 무슨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날마다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첫출발부터 목표지점까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정확한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최종목적지에 다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먼저 파티를 할 수도 없고 축배를 미리 마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 하나님의 사역도 창의적 접근지역 내에서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아실 뿐입니다. 우리 생애 가운데 작은 불씨의 역할을 하고, 벽돌 한장의 역할로 충분한 존재감과 가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저희들도 온타리오의 뜨거운 여름 날, 어린 제이콥과 쟌을 데리고 더 비싼 음료를 사먹이면서 동네를 돌며 캔과 병을 수집해서 팔았습니다. 한 달에 30불이면 한 생명이 굶지 않고 하루 한 끼를 먹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찬송가에서 부르듯이 “멸시와 천대, 아무도 찾지 않는 아골골짜기 같은 빈들에,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하는 가사의 고백처럼,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을 바라보는 모세의 심정이 되셨을 K 목사님 내외분의 심정을 잠시나마 헤아려 봅니다.      구주 예수를 의지하는 믿음의 기도로, 자기를 드러낼 수 없는 그곳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20년의 떨리는 심장과 고단하고 지친 발걸음이, 희미한 기억을 넘어서 분명한 기록으로, 어둠을 뚫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처음나오게 된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합니다. 일생을 오직 예수님만 바라본 K목사님의 음성을 듣기만해도,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감사함이요 은혜가 넘칩니다. 목사님, 일 없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루시고 우리는 꿈꾸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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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회복의 통로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6.01
    2025년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분열 속에서 깊은 위기를 지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정치 지도자들의 사법 리스크, 여야의 극단적 대립은 단순한 정쟁을 넘어 국민들의 일상에 피로와 냉소를 퍼뜨렸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신뢰와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사회는 진영 논리에 갇혀 상대를 ‘대화의 대상’이 아닌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익숙해지는 시대, 우리는 어느새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이 시점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교회도 한쪽의 입장과 함께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 사회에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오늘의 교회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동적으로 ‘도덕적 권위’를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교회는 지금 사회의 고통을 진심으로 듣고 있는가?”라고. 이 물음 앞에 교회는 정직하게 서야 할 때다. 교회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의 안전함보다, 공동체의 아픔과 함께 울고, 회복을 위한 걸음을 동행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소통은 단순한 언어의 교환이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한국 교회가 이 ‘소통의 감각’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복음은 아무리 외쳐도 세상의 마음에 닿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교회가 먼저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지금처럼 혼란과 분열의 세상과 교회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나?첫째, 교회는 정치적 중립성과 진리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복음은 결코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종속된 메시지가 아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의 죄악을 꾸짖고 정의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어느 한 진영의 손을 들어주는 언어가 아니다. 그러나 일부 교회는 정치적 편향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복음을 세속 권력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 왔다. 이러한 언행은 신앙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이제 교회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시대적 불의를 분별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첫 단추다.둘째, 공동체 안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문화를 세워야 한다. 교회는 청년과 노년, 남성과 여성, 이주민과 장애인, 비기독교인까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작은 사회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교회는 아직도 획일적인 언어와 문화, 동일한 목소리만을 요구하며, ‘다름’을 불편해한다. 세상의 갈등을 치유하려면, 교회 안부터 다양한 목소리를 품고, 다름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는 공동체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포용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를 더 깊이 적용하고 확장하는 능력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 낯선 생각에 대한 열린 마음이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소통의 덕목’이다.셋째, 사회적 약자를 향한 섬김과 연대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많다. 청년 실업자, 독거노인,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탈북민 등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교회가 이들의 아픔을 듣고, 구체적인 지원과 돌봄을 실천할 때, 그 행위 자체가 세상과의 소통이 된다. 말보다 삶으로 전하는 복음, 그것이 진짜 소통이며, 회복의 씨앗이 된다.몇 번을 강조하지만, 이제는 교회가 말하기에 앞서 먼저 들어야 할 때다. 세상이 고통 속에서 내는 신음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다. 교회가 소통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정죄보다 공감으로, 배타보다 환대로, 주장보다 경청으로 나아가는 교회. 그럴 때 비로소 세상도 교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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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5월을 보내며 드리는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6.01
    1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주님 어제 하지 못한 것 오늘 하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기가 바쁘게 감사가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느때는 하루를 지내고 저녁에 감사문을 올리면서 오늘 하루에 있었던 사건들이나 깨달은 것으로 감사를 드리는데 오늘은 시작하기도 전에 감사가 끊이지 않을 때 이건 무슨 감사인가 생각하니 아무 이유도 없고 상황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사가 쏟아져 나와 의아한 채로 하루를 시작하게 됨을 감사합니다.2 이른 아침 정기검사를 위해 강제 금식을 하고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지금은 금식기도를 할때인데 당뇨핑계로 그냥 넘어가려 할 때 강제 금식에 동참케 하십니다. 검사후 집에 돌아와서 카톡방을 열어보니 리더의 재량으로 금식기도당번들의 이름이 올라와 금식에 동참하는 사모님들을 보고 하나님이 이방에서 드리는 금식기도에 응답해 주실것을 확신하며 감사를 드립니다.3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다른 언어로 표현한다면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자존감의 열매를 맺을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젊은 사모와 나누면서 서로 기억할것을 약속하며 현실적인 상황을 해석하는 시간 갖게 하심 감사합니다.4 다음달에 전할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묵상하는 가운데 다니엘앞에 놓인 사자굴이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생각하다가 내앞에 있는 현대판 사자굴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며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이 새롭게 펼쳐져서 어떻게 요리하여 사모님들께 전할것인가를 고민하며 하루를 감사로 마무리 합니다.5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한 내용들이 보기좋게 거절당할때는 쉽게 낙심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기를 쉬지 않고 계심이 거절당한 기도안에 숨겨져 있다가 때가 되어 수십년이 흘러간 오늘 드디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을 볼때의 감격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어 함께 마음이 통하는 분들과 실컷 나눌수 있어서 감사합니다.6 유머가 통하는 대화의 관계는 그렇지 않은 자들과의 대화보다 훨씬 폭이 넓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길이와 깊이가 바로 우리의 대화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을 현실로 직감하면서 하나님은 유머의 달인이시며 유머의 창조자이심을 재인식하고 나니 마귀는 유머를 할 수 없음을 알고 유머의 달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감사합니다.7 욥의 친구들은 율법의 틀로 프레임을 만들어 욥을 그 안에 넣고 판단하면서도 위로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욥은 그 틀을 넘어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싶어 몸부림 치며 친구들과 항의를 했습니다. 이런 욥에게 마침내 아버지는 우주만물을 보여 주시며 당신의 세계속으로 초청하여 함께 시선을 같이 하면서 당신의 세계를 보여 주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욥기서에서 단순한 욥의 인내를 묘사한 것이 아님을 알고나니 욥기서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되어 감사합니다.8 고난의 신비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좋아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세계를 가장 빠른 속도로 가게 하는 직선도로입니다. 그동안 알수 없는 영역의 고난을 겪고난 후 내린 정의로 고난을 받아드릴때마다 새로운 장이 열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어서 그때마다 행복의 깊이는 더욱 깊어져 갑니다 그래서 오늘을 시작할때 나왔던 감사는 상황을 뛰어넘는 감사, 상황과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마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과 같음을 하루를 마치고 감사문을 기록하면서 내려진 결론이기에 감사합니다.9 완벽하지 않은 지도자를 붙들고 일하시는 하나님, 못난것밖에 없는 나를 불러서 꿈에도 그려보지 못한 사명을 주시고 마침내 이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만이 내게서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10 사람은 누구든지 인기를 얻고 싶어하고 훌륭해 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는 훌륭한 사람은 이세상에 오래 두지 않으시고 빨리 불러 가십니다. 왜냐하면 정상에 오르고 나면 내려가야 할 일만 남기때문에 훌륭해진 그의 인격이 더러워지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세상에 두지 않으십니다. 아직 세상에 두신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자녀다운 자로 멋있게 성장하게 하시려 함인 것을 알고 나니 더욱 감사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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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준비된 예배 크리스천헤럴드2025.06.01
    예배는 기쁨과 감동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이 공존하는 자리이다. 시간을 구별하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러 모이는 특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정하신 날 하나님께 영광 받으시라고 초청하는 잔치 와도 같다. 손님을 대접할 그릇을 닦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하고 대접할 음식을 맛있게 준비하듯이 정성으로 경배와 예식을 준비한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들로 예배의 모든 순서를 준비한다. 싫어하시는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들은 깔끔하게 청소를 한다. 그 중 가장 열심히 청소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자아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인간의 탐욕과 교만한 마음이다. 공교롭게도 창조물 중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이 예배를 드리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다.예배당에서 참기 힘든 역겨운 냄새는 오래된 카펫도, 비가 오면 눅눅해지는 벽에서 나는 냄새도 아닌 바로 인간의 자아가 드러난 사람 냄새이다. 사람이 드러날수록 하나님은 가리워지고 예배가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질된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고 사람의 만족을 채우는 예배가 되어버린다.어느 때보다 예배에 자유함과 풍성함이 있지만 두려움과 떨림이 사라지면서 예배의 본질을 놓칠 때가 있다. 음악이 주는 만족이 예배의 대상을 향한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영국의 찬양사역자 Matt Redman 은 한동안 교회에서 모든 악기 사용을 중단하고 목소리로만 찬양을 했다고 한다. 예배자의 중심을 돌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는 그 후 “Heart of worship” 이란 명곡을 쓰게 되었다.준비된 찬양리더들이 예배를 인도할 때 자신과 찬양팀이 드러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예배자의 시선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도록 두려움과 떨림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사람의 향기가 풍길까 봐 끊임없이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고 돌아본다.현대음악이 예배에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어찌 보면 사람이 문제였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거부반응보다 새로운 음악을 하는 사람의 태도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감정적 채움을 풍성함으로 내세우며 사람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경각심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익숙지 않은 악기의 불편함 보다 성도들의 감수성과 영성에 예민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일수 있다. 악기는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영혼이 담긴 생명체도 아닌데 악한 악기가 어디 있겠는가. 악기소리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음악의 장르는 어디까지나 취향일 뿐이다.은혜는 음악이 끼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끼치는 것이다. 시험도 음악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사용하고 전달하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때때로 하나님이 가려지고 인간의 축제가 되어버린 예배를 보며 염려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A.W. 토저는 그래서 “예배인가 쇼인가!” 라고 반문한다. 오늘도 준비되지 않은 예배인도자들이 이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깊이가 부족하고 영성이 부족하다는 질책도 받는다. 모두가 잘 보이는 무대 한복판에 서지만 철저히 가리워져야 하는 것이 예배 인도자들이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인도자는 쇠하여야 하겠고, 소리처럼 증발하여야 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인도자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요, 쓰임 받는 도구일 뿐이다. 오직 주님만이 들어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인도자의 기쁨과 만족은 음악과 분위기에서 조명과 함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주님께 신실한 종이라 불림 받는 데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린 예배에서 오는 만족과 기쁨은 그 어떤 화려한 음악보다, 조명과 함성보다 크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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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08 김광근 - 말씀 앞에 머무는 일상의 경건 크리스천헤럴드2025.06.01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윤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넷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장 2-3절 시편 1편은 경건한 삶의 본질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합니다. 이 나무는 시냇가 곁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계절이 바뀌어도 늘 푸르른 열매를 맷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삼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안정과 영적 풍성합을 누리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지혜는 깊이 있는 말씀 묵상에서 자라납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드리는 말씀 앞의 잠깐의 정숙함이 우리의 선택을 다듬고, 관계를 인도하며,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교훈이나 원리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숨결입니다. 신앙은 특별한 사건보다도 반복되는 일상의 충실함 속에서 자라납니다. 시냇가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오늘도 말씀 앞에 머무는 자에게 하나님은 철마다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십니다 외적 상황이 어떠하든 내면이 마르지 않는 은혜를 경험하기 원한다면 지금 그분의 말씀 앞에 조용히 머물러 보십시오 말씀은 언제나 생명의 물줄기를 휴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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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간절함 크리스천헤럴드2025.06.01
    요즘 저는 매일 창세기 새벽묵상을 하고 방송 녹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씀 묵상을 준비하다가 문득 한가지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간절함입니다. 나는 이 작업을 얼마나 간절함으로 준비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은 아내의 한마디였습니다. 사역자들에게서 ‘열정이 있든지, 간절함이 있든지, 눈물이 있든지, 영혼을 사랑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나님이 찾으시고 도구로 사용하실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아침 8 시, 중보기도를 인도하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동역자들에게 강조하고 부탁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길이나 기도 소리의 크기나 기도의 장소와 환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함으로 드리시길 바랍니다. 내 생애에 드리는 마지막 기도라고 생각하십시오’ 라고 선포하고 시작합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간절함은 우리 신앙의 중심이고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함은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정성과 간절함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정성은 명사로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을 말합니다. 간절함은 형용사입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 라는 의미라고 네이버 사전에서 정리합니다.간절함을 표현한 문구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을 정말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인간의 간절함은 못 여는 문이 없다. 인간의 의지, 스스로 운명을 바꾸는 힘, 그 간절함은 신의 계획에 변수가 된다.”, “생생하게 상상하라 간절하게 소망하라 진정으로 믿어라 그리고 열정적으로 실천하라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등등, 이런 짧은 문장들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간절함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간절한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고, 기적을 경험하는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 환경적인 어려움이나 관계의 불편함 혹은 물질이나 육체의 고통으로 인생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가 죄 사함을 받았고, 고침을 받았고 살아났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일이 더 안풀려서 꼬이고 복잡해졌다는지, 앓고 있는 병이 더 악화되서 심각해지고 죽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예수님 앞에 간절함으로 엎드린 사람들은 죄사함을 받고, 안되던 일들과 문제들이 해결되고 평안함과 웃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평안히 가정으로 가족들 품으로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자기 문제가 해결됨을 자랑하고 가족들과 몰려든 구경꾼에게 간증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간절함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야고보서 5:16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고 말씀합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간구라는 말을 “간절하고 효과적인 기도(the effectual fervent prayer)”라고 표현합니다. “effectual” 라는 단어는 “바라는 결과를 낼 만한”이라는 뜻입니다. “fervent”는 “지속적인, 계속되는, 강렬한”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간절하고 효과적이고, 의미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간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여러분, 간절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믿으십시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기도하십시오. 청취자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얼마나 간절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간절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간절하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공동체를 얼마나 간절하게 섬기고 있습니까? 간절함으로, 강청함으로 일과를 마치고 문을 닫고 잠 자리에 들었던 친구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은총을 구하며 간절함으로 기도해서 하늘의 응답을 받는 우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만이 소망이요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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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07 김광근 -두려움 없는 사랑의 방향 크리스천헤럴드2025.04.29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형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장 2-4절오순절의 아침, 그날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은 이전과 전혀 다른 공간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모여 있었고, 그들의 마음속엔 아직 완전하지 않은 확신과 방향 없는 열정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인간의 준비 여부를 묻지 않고, 하늘로부터 갑자기 불어왔습니다강한 바람 같은 소리' 성령은 조용한 속삭임이 아니라, 때로 질서를 흔들고, 닫힌 문을 열고, 주저함을 밀어내는 강한 힘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날 제자들의 언어는 달라졌고, 그들의 시선은 더 이상 자신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성령은 단지 힘' 이상의 존재입니다.그분은 하나님 자신의 임재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된 동반자입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말하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바람 단지 숨 쉬는 존재로 머물러 있던 교회를, 드디어 세상을 향해 걸어가게 만든 분이었습니다오늘날 우리 안에 주어진 성령도 여전히 바람처럼 불고 계십니다. 우리가 닫아 둔 마음의 문과 움츠린 사명의 자리를 흔들며, 지금도 교회를 세상 가운데로 밀어내고 계십니다.그 바람 앞에 우리는 질문받습니다. 머물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두려움에 붙잡힐 것인가, 아니면 순종의 바람에 실려보낼 것인가.오늘, 당신은 성령의 바람을 느끼고 계십니까?그것은 두려움 없는 사랑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하나님 자신의 호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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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한 달란트의 위용 크리스천헤럴드2025.04.29
    유대인의 화폐 단위였던 달란트는 오늘 날 재능이나 타고난 자질을 말할 때 사용한다. 만든 적든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이용해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 능력과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있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재능 즉 달란트를 주셨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그렇다. 주인은 세 종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받은 것을 활용해서 수익을 내도록 맡겼다. 이 중 두 사람은 재능을 활용해서 성과를 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어 아무런 결실을 만들지 못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으른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태도에 집중한다. 금 한 달란트도 적은 돈이 아닌데 왜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노력해서 두배의 결실을 거뒀는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왜 작은 결실이라도 내지 못했을까? 의심이 가는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동기부여이다. 이 비유에서 간과하기 어려운 사실이 더 받은 사람과 덜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문제가 된 종은 그 중 가장 적게 받은 사람이었다. 혹시 적게 받아서 자신이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은 아닐까? 기왕이면 많이 받아 많은 결실을 내어 주위에 인정받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적게 받은 사람의 열심이 많이 받은 사람과 같기 어려울 수 있다. 노력해 봤자, 더 가진 두 사람의 결과에 비교할 수 없을 테니 가진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여기에 우리가 조심해야 할 함정이 있다. 한 달란트도 결실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재능이지만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하찮아 보여 열심을 낼 의욕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재능으로 큰 일을 이룰 수 없다 여기니 그것을 위해 수고할 가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들은 모두 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작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뛰어나고 큰 능력을 가진 소수보다 작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 문제는 한 달란트 가진 사람들이 많고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많은 능력을 가진 몇 사람을 향하게 된다.어쩌면 한 달란트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소심한 생각에 빠질 수 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변화가 적다 해서,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차이가 적다 해서 스스로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 있는 몇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의 몫이라 생각하고 관중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많고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적다. 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열명을 모이면 열 달란트가 된다. 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모으면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보다 입도적으로 많아서 더 크고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거대한 힘은 이 작은 힘들이 모여 연합해서 일으키는 것인데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소유한 힘과는 비교도 안 될 막강한 힘이다. 진정한 변화는 이 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한 달란트를 가진 이들의 재능을 작고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막대한 일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합지졸이 되어 버린다. 오늘날 교회가 약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존재들이라 생각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해져 교회가 힘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달란트의 비유는 많은 것을 가진 특별한 능력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한 달란트를 가진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불충성을 호되게 나무라신다. 주신 재능을 하찮게 여기고 맡기신 일을 소홀이 여기는 태도를 나무라시는 것이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버린 종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고 대단한 능력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고 내게 주셨고, 나를 부르셨다. 우리는 작은 일에 충실하고 부르신 곳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한 달란트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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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신뢰를 회복한다(2) 크리스천헤럴드2025.04.29
    최근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한 결정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조치는 한국이 미국의 첨단 기술과 연구 협력에서 일정 부분 제한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외교적 갈등을 넘어 국가 간 신뢰와 소통의 부재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시사한다.발표된 기사나 매체를 분석할 때, 미국의 결정은 단순한 기술적 고려만이 아니라, 국가 간 소통과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과 미국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한국의 정치적인 불안과 정책의 변화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상대국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등의 첨단 기술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제재 대상이 된 것은 경제적·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외교적 차원에서도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경고일 수 있다.또한, 신뢰 부족은 단순히 경제 협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의 근본적인 관계에도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기술 보호 문제로 시작된 조치가 정치·군사적 협력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그렇다면, 이 문제를 국가 간 관계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 그리고 교회의 역할과 연결해볼 수 있을까?신뢰가 무너진 곳에서는 갈등이 깊어지고, 결국 관계가 단절되기 쉽다. 이것은 국가 간 관계뿐만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념과 세대,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교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정치에 대한 편협한 판단이 세대의 분열과 교인 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교회는 본질적으로 ‘소통’과 ‘화해’를 위한 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하나 되기를 강조하셨다. 하지만 교회가 신뢰를 잃고 사회와의 소통이 단절된다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그러면 교회가 실천해야 할 ‘소통의 원칙’은 무엇인가?1. 정직한 대화: 국가 간 신뢰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는 솔직한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내부적으로는 교인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적으로는 사회와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정직하고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대화뿐만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포함한다.2. 신뢰 회복을 위한 행동: 말뿐만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신뢰는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다. 작은 약속을 지키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여줄 때 신뢰가 형성된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약자를 돌보며, 공정성과 윤리를 지켜나갈 때 사회적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또한, 교회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때 더욱 신뢰받을 수 있다.3. 다양성과 포용성 인정: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입장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내부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세상과도 열린 태도로 소통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교회가 세상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포용하는 자세를 가질 때, 다시금 소통의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사회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미국의 ‘민감 국가’ 지정은 단순한 경제적 조치가 아니라, 우리가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경고일 수 있다. 이 문제를 국가 간 외교적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의 신뢰와 소통의 문제로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소통과 화해의 장이 될 때, 사회와 국가 간에도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신뢰가 무너질 때, 그 회복을 위한 첫걸음은 소통에서 시작된다. 교회는 먼저 소통을 실천하고 신뢰를 쌓으며, 사회 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신뢰를 잃은 시대에 교회가 먼저 소통을 실천하며 신뢰를 회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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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4월, 부활주일에 드리는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4.29
    1 오늘도 새로운 날을 주셔서 오늘에 주실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 감사합니다.2 사모데이에 전할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미국땅에 처음 도착하자 맞이했던 인생의 밤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찾아왔던 절망감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밤에 찾아와서 속삭이신 주님의 말씀은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오히려 지금까지 견딜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어서 감격하며 원고를 써내려 가게 하신 은혜 감사를 드립니다.3 죽음을 이기고 승리의 부활주로 다시 다가오실 주님은 어떤 끔직한 고통보다 위에 계신 분으로서 고통을 점령하신 승리의 주님께 오늘도 찬양 올려 드리며 감사를 외쳐 봅니다.4 부활절 퍼레이드의 행진을 보면서 선교 140년을 맞이한 한국땅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아펜셀러 선교사님의 5대손과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4대손이 함께 참여하여 감격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5대,6대손 자녀들을 가진 나로서 하나님의 복음이 이들을 통해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한 가운데 희망을 갖고 감사를 드립니다.5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자연원리는 수천년의 역사속에 아직도 진리로 남아 있으니 사모사역속에 감추인 고난의 씨앗은 수많은 사모들을 살리는 생명력을 품고 있음을 상기할때마다 고난의 의미는 또 하나의 신비임을 철저히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6 하나님의 사랑은 베드로의 실패의 자리까지 따라오셔서 기어코 그를 회복시키고 새사명을 주신 이유는 사명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관계임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질문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주님이 베드로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반응을 좀 보여 주렴" 하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도 나에게 질문해 오시는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확인시키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알고 주님께 고백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7 불평을 품은 자들은 매 사건속에서 불평만을 선택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사건과 환경속에서 감사만을 찾아서 고백합니다. 마치 철이 지남철에 가까이 하면 들어 붙듯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붙는 것이 다릅니다. 내안에 계신 주님으로 가득 채우기만 하면 어떤 상황도 부활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어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8 디모데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역경을 지나는 동안에도 그분을 더 깊이 알수 있는 축복을 주실 것을 믿으니 새롭게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 오릅니다.9 인생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푼푼초초 우리를 단련하시어서 마침내 영광스러운 존재로 누리게 하시는지 생각할수록 알 수 없습니다. 욥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던 날들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길 주의 크신 은혜라" 라고 고백하며 눈물의 감사를 드려봅니다.10 나를 위로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 이번 사모데이에 참여하시는 모든 사모님들을 만나 주시어 다시 일으켜 세우사 창공을 날으는 독수리처럼 모두 날게 하옵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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